[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수면 주기 = 에어컨 설정 시간'…밤은 더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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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최고기온 10년간 0.12도 오를때 밤 최저기온은 0.24도 껑충 ‘두배’ / 온난화 진행 속도 밤에 더 빨라져 / 기록적 폭염·열대야 생태계 위협
지난 밤도 네다섯 번 눈을 떴습니다. 통잠을 자본 게 언제였는지. ‘밤 시간 만이라도 에어컨 없이 버텨보자’라는 마음과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이 합쳐져 ‘딱 한 시간만 틀지 뭐’ 했더니 수면 주기가 에어컨 설정시간만큼 줄어들었습니다. 해도 너무하다 싶은 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새벽까지도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문명의 이기 탓에 인간의 인내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말 밤 기온이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요? 기후학자들은 후자 쪽 손을 들어줍니다. 지구온난화의 진정한 야성은 해가 내리쬐는 낮이 아니라 컴컴한 밤에 드러난다는 겁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온난화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뜨거워지는 낮, 더 뜨거워지는 밤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올해만큼이나 자주 거론되는 해가 있습니다. 1994년과 2016년이죠.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하는 연도입니다. 1994년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 95개 관측지점 가운데 ‘최고기온 1위 타이틀’을 24군데서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2016년은 8월 하순에 접어들도록 한여름 무더위가 이어져 온국민을 지치게 만들었죠. 그런데 우리 인간이 만일 야행성이었다면, 2013년과 지난해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2013년과 지난해 8월은 역대 열대야가 각각 두 번째, 네 번째로 많았습니다. 최저기온의 최고값, 그러니까 ‘가장 더운 밤’ 1위 기록을 봐도 2013년과 지난해의 위세는 대단합니다. 악명높은 1994년도 남원, 천안 등 4곳에서만 가장 더운 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은 15곳, 지난해는 무려 18곳에서 1위 기록을 새로 썼죠. 근래 들어 참을 수 없이 더운 밤이 빈번해진 탓입니다. ‘그냥 어쩌다 극한의 열대야가 나타난 건 아닐까’라고 넘기기엔 밤 기온의 상승세가 심상찮습니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1912년부터 지난해까지 낮 최고기온은 10년마다 0.12도 올랐는데, 밤 최저기온은 0.24도씩 두 배 빨리 올랐습니다. 비유하자면 지구온난화가 낮에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밤에는 KTX로 갈아탄 셈이죠.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미국도 밤 기온이 낮보다 두 배 빨리 상승했고, 이런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밤 기온이 빨리 오를 수밖에 없는 까닭 왜 밤은 자꾸 더워지는 걸까요? ‘더운 밤’이라고 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이 떠오릅니다. 도시화가 되면서 아스팔트가 깔리고 인공열이 늘어나니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뜨거운 현상 말입니다. 2015년 기상청 연구과제로 수행된 ‘한반도 장기기온 변화 및 도시화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대도시의 낮 최고기온은 10년마다 0.26도 올랐는데 밤 최저기온은 0.44도 올랐습니다. 소도시에서도 낮에는 10년마다 0.16도, 밤에는 0.37도가 올랐죠. 밤 기온을 올리는 데 도시화가 한몫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 도시화때문이다’라고 하기는 곤란해요. 밤의 빠른 온난화는 장소(도시·시골)와 계절을 불문하고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좀 더 보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십수년 전부터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단서를 찾았는데 구름과 비, 토양습도가 그것입니다. 기후모델로 분석을 해보니 온난화가 진행되면 고위도로 갈수록 구름이 많아질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구름은 햇빛을 반사시켜 낮 기온을 떨어뜨리지만, 밤에는 솜이불처럼 열기가 식는 걸 방해합니다. 그래서 구름낀 날에는 일교차가 적습니다. 서울의 가장 더운 밤(29.2도)이 찾아온 지난 23일도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죠. 하지만 구름 탓만 하기도 석연찮습니다. 민승기 포항공과대 교수(환경공학)는 “(관측이 아닌) 모델 결과라는 점과 온난화가 진행되면 고위도 운량이 늘어나는 건 맞지만 중·저위도에서는 오히려 운량이 줄 수 있다”며 “낮밤 온난화 차이를 구름 양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비와 토양습도 또한 지역별 효과가 제각각이어서 속시원한 설명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직 이렇다할 이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2년 전 노르웨이 연구진은 밤의 빠른 온난화는 대기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빚어진 ‘숙명’이라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밤은 낮보다 대기 두께가 얇아서 쉽게 데워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대기 두께가 얇다니, 공기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현상 중에 대류가 있죠. 뜨거워진 입자는 올라가고, 입자가 식으면 다시 내려오고 하면서 빙빙 도는 것 말입니다. 대기도 마찬가지로 낮 동안 지표가 뜨거워지면 지표 가까이에 있던 공기는 하늘로 올라갑니다. 공기가 올라가다 식으면 다시 땅으로 내려오죠. 이렇게 지표 가열로 직접 영향을 받는 구간을 굳이 어려운 말로 ‘대기경계층(PBL·planetary boundary layer)’이라고 부릅니다. 밤보다는 낮의 지표가 더 뜨거울테니 달궈진 공기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낮에 더 높습니다. PBL 두께가 밤보다 낮에 더 두꺼운 것이죠. 서명석 공주대 교수(대기과학)는 “똑같이 가열했을 때 물 1㎏이 담긴 주전자가 10㎏ 담긴 주전자보다 빨리 끓듯이 PBL 두께가 얇은 밤에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소리 없이 당신의 건강을 노리는 열대야 열대야가 늘어나는 것만도 힘든데, 폭염이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를 끌어들여서 더 걱정입니다. 이명인 폭염연구센터장(울산과학기술원 교수)이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열대야 발생 추이를 살펴봤더니 열대야가 일어난 날 폭염도 같이 일어나는 빈도가 급증했습니다. 과거 10년(1973∼1982년) 동안에는 열대야 10일 중 7∼8일은 열대야만 일어나고 2∼3일만 폭염과 열대야가 함께 일어났었죠. 그런데 최근 10년(2008∼2017년) 사이에는 열대야만 일어나는 날이 엿새로 줄고, 나흘 정도는 폭염과 열대야가 함께 들이닥쳤습니다. 최근 5년으로 기간을 더 좁히면 열대야 단독 발생일과 열대야·폭염 동반 발생일이 거의 5:5로 비등합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대야와 폭염이 서로를 불러들이는 형국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낮없이 폭염에 시달리게 된 것이죠. 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면 졸리고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열대야가 단순히 피곤한 나날들이 아니라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국 런던 위생열대 의학대학원(LSHTM)은 1993∼2015년 사이 런던 시민의 사망률과 기온와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낮기온이 상위 1% 수준까지 치솟은 ‘극한 더위’가 펼쳐졌을 때는 상위 20% 수준의 ‘평범한 무더위’일 때보다 만성 허혈성(혈관 이상으로 인한 빈혈) 질환자의 사망률이 29% 높았습니다. 그런데 밤기온이 ‘극한 더위’를 보일 때는 그 비율이 46%로 올라갔습니다. 뇌졸중도 극도로 더운 날에는 사망률이 32% 올라갔지만, 극도로 더운 밤에는 70%나 상승했죠. 신경계질환, 정신질환 등도 폭염보다는 열대야 때 더 높은 사망률을 보였습니다. 조금 복잡한 통계를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요지는 밤낮없이 더우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밤에라도 몸이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탈이나고 마는 것입니다. 식물도 괴롭긴 마찬가집니다. 식생이 얼마나 자라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식생지수(NDVI)’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반구에서는 대체로 최저기온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그러니까 밤이 더워질수록 NDVI값이 줄어듭니다. 필리핀에서는 최저기온이 1도 오르면 쌀 생산량이 10%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습니다.